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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를 통치철학으로 삼은 조선은 무엇보다 조상 숭배를 중시했다. 그래서 왕릉은 왕이 잠들기 위해 매우 중요했다. 왕이 세상을 떠나자 당대 최고의 지류(풍수리학자)가 동원되어 왕릉의 위치를 정하였다. 살아 있을 때 미리 매장지를 정한 왕도 있었다.


왕의 매장지를 결정하는 데는 풍수가 최우선이었다. 풍수지리에서는 물, 산, 땅, 바람과 같은 자연현상이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여겨졌다. 왕이 머물렀던 궁전만큼이나 죽은 왕이 묻힐 곳을 정할 때 풍수지리적인 면에서 매우 좋은 장소를 택했다.


일단 왕릉의 위치가 결정되자 본격적인 왕릉 건설이 시작되었다. 무덤은 왕의 업적과 미래의 왕이 누구냐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비슷한 틀을 가지고 있었다.


왕릉 입구에는 제사를 지내는 곳인 재실이 있고, 이어 연못과 금천교라는 다리가 있다. 황금 하늘 다리는 왕의 영혼의 신성하고 세속적인 공간을 구분했다.


금천교를 지나면 이곳이 신성한 곳이라는 뜻의 붉은 색의 붉은색 살금문이 있다. 홍살문 앞에는 참도라는 길이 있다. 섬은 죽은 영혼(왕)이 사용하는 신과 살아있는 왕이 사용하는 물고기로 나뉜다. 참호 끝에 사각형이 있다. 정자각은 향을 피우는 장소였고, 실제로 제사를 지냈다.


정자 뒤편에는 본격적인 무덤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정자 뒤편에는 길 끝에 석상, 석상, 석마 등의 돌 조각이 있다. 두 문관 사이에는 묘지를 밝혀 악령을 내쫓는 긴 등불이 있고, 묘소 앞에는 혼석이라 불리는 큰 돌이 있다.


바위는 음식을 얹는 곳이 아니라 영혼이 쉬거나 놀 수 있는 곳이다. 묘비 뒤에는 무덤이 있다. 왕릉에 따라 난간과 병풍 등을 세운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왕이 자고 있는 무덤 근처에는 돌로 조각한 동물 조형물이 있고, 무덤 끝에는 '곡장'이라는 울타리가 있다. 비록 규모는 다르지만 마치 왕이 살았던 궁전이 상징적인 의미로 옮겨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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