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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왕릉의 상징 동구릉

조선왕릉의 대표적인 장소는 서울 동쪽의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이다. 이곳이 동구릉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곳인지 짐작할 수 있다. 동구릉은 동쪽에 있는 아홉 개의 무덤을 뜻한다.


동구릉은 1408년(태종 8) 태조 이성계가 세상을 떠나면서 처음 건립되었다. 태조가 묻힌 건원릉에는 왕과 왕비가 많이 묻혔고, 동구릉에는 17번째 큰 시신이 안장되어 있다. 조선왕릉 중 가장 큰 무덤군이다. 태조 이성계가 묻혔을 때 동구릉이 아니라 건원릉으로 불렸다.


이후 문종, 선조, 장렬왕후, 현종이 무덤에 묻혔고, 단의왕후와 영조의 능을 동칠릉이라 불렀다. 헌종과 문조(효명왕의 호칭)가 묻힌 후 19세기 중엽부터 동구릉(東口陵)


좋은 땅과 위치를 연구하는 풍수지리학자들은 태조가 안장된 건원릉이 세계 최고라고 말한다. 건원릉은 주변을 볼 수 있어도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태조는 죽자 고향인 함흥에 묻겠다는 유언을 남겼지만 아들 태종은 함흥이 너무 멀다고 하며 궁에서 80리 이내에 명소를 찾으라고 명령했다.


건원릉은 궁중 대신 김인귀에 의해 발견되었고, 풍수를 잘 아는 하륜이 사당을 찾아 묘지로 택하였다. 명나라 사신들뿐만 아니라 많은 풍수지리학자들이 주위의 자연환경과 잘 조화된 건원릉을 바라보며, "어찌하여 그런 천지가 있으랴. "인공산이야." 인공산이라고 감탄한 기록이 있다.


동구릉의 인상적인 왕릉은 제24대 헌종, 효현왕후, 7세에 즉위한 효정왕후 등이 있다. 경릉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3기의 무덤이다. 이 무덤들은 삼연릉이라고 불린다. 앞에서 보면 왼쪽에 헌종, 가운데에는 효현왕후, 오른쪽에는 효정왕후가 있다.


경릉은 당시의 유력 가문들이 얼마나 위세를 떨쳤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보통 왕이 죽으면 혼자 묻히거나, 왕과 함께 왕비를 무덤에 묻거나(왕과 왕비는 무덤 이름) 왕과 왕비가 따로 무덤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권세가 없던 헌종이 먼저 세상을 떠나 동구릉에 묻힌 효현왕후의 묘인 경릉에 묻혔다. 왕명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왕비의 직함이 있는 왕릉에 묻혔다. 헌종은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이리하여 안동 김씨 출신인 순원왕후는 수렴청정과 청소로 실권을 행사했고, 김씨의 영향력은 왕권력보다 강했다. 그래서 왕비는 왕비의 별명이 함께 묻힌 곳에 묻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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