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를 통치철학으로 삼은 조선은 무엇보다 조상 숭배를 중시했다. 그래서 왕릉은 왕이 잠들기 위해 매우 중요했다. 왕이 세상을 떠나자 당대 최고의 지류(풍수리학자)가 동원되어 왕릉의 위치를 정하였다. 살아 있을 때 미리 매장지를 정한 왕도 있었다. 왕의 매장지를 결정하는 데는 풍수가 최우선이었다. 풍수지리에서는 물, 산, 땅, 바람과 같은 자연현상이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여겨졌다. 왕이 머물렀던 궁전만큼이나 죽은 왕이 묻힐 곳을 정할 때 풍수지리적인 면에서 매우 좋은 장소를 택했다. 일단 왕릉의 위치가 결정되자 본격적인 왕릉 건설이 시작되었다. 무덤은 왕의 업적과 미래의 왕이 누구냐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비슷한 틀을 가지고 있었다. 왕릉 입구에는 제사를 지내는 곳인 재실이..
519년 동안 조선을 이끌었던 왕실의 무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곳은 왕릉이다. 황태자 부부가 묻힌 곳을 원이라고 하는데, 13개의 깃발이 있다. 또한 대군, 공주, 옹주, 후궁, 귀족 등이 묻힌 곳을 '묘'라고 하는데, 모두 64기의 무덤이 있다. 왕들이 모두 왕릉에 묻힌 것은 아니었다. 종묘에서 조상의 위패를 모시지 않은 왕과 왕비는 왕릉에 들어갈 수 없었다. 10대 왕 연산군과 15대 왕 광해군은 종묘에 사당이 없어 왕릉이 아닌 무덤에 묻힌다. 조선시대 왕릉은 대부분 수도였던 한양 외곽에 있다. 왕릉을 80리(오늘 100리, 당시 10리) 안에 위치시켜야 한다는 법이 있었기 때문이지, 오늘날 4km가 아니라 5.2km였다. 그리고 궁에서 나오는 왕실 행렬은 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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